한국 천주교 순교 (신앙유형, 문초록, 원시장 베드로)
신앙의 네 가지 유형,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제가 이 강의를 처음 들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1801년 최초의 전국적 박해 무렵, 당시 조선에 천주교 신자로 들어온 사람들을 유형별로 분류하면 크게 네 가지가 나온다는 겁니다. 듣는 내내 '나는 어디에 해당할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는 선각적 지식인형입니다. 5천 년 유교 전통 속에서 천주교라는 전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당대 최고의 선비들입니다. 일부일처제, 남녀평등 같은 개념이 상상조차 되지 않던 시대에 이를 수용했으니 진정한 시대적 선구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되자 이들 중 대부분이 신앙을 떠났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1790년에 천주교를 떠난다고 선언하고, 이후 평택 현관 벼슬자리에 나갑니다. 지식이 신앙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두 번째는 현세적 기복형(祈福型)입니다. 기복(祈福)이란 현세의 복을 비는 신앙 태도를 말합니다. 무당, 관운장 귀신, 일월성신 등 여러 신령에게 복을 빌다가, 천주님 한 분만 믿으면 된다는 천주교에 매력을 느껴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박해가 시작되자 이들이 그냥 떠난 게 아니라 동료 신자들을 밀고(密告)하고 떠났다는 겁니다. 순교자 수만큼 밀고자가 있었다는 말이 이 유형에서 나옵니다.
세 번째는 연쇄적 내세 지향주의자형입니다.
관리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 즉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고 백성을 착취하는 폭정과 만연한 부패에 지쳐 이 세상을 등진 사람들입니다. 천주교의 '하늘나라' 사상이 이들에게 탈출구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진심은 있었지만 올바른 방향은 아니었고, 이들 가운데서도 신심이 바로잡혔을 때만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가 참 그리스도교적 신앙인입니다. 앞의 세 유형이 모두 떠난 자리를 지킨 이들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밑에 끝까지 남아 있던 성모님, 마리야, 막달라 마리야, 사도 요한처럼, 한국 초대교회도 이 남은 자(렘난트, Remnant)들이 피를 흘려 교회를 지켜냈습니다.
을사추조적발사건과 한국 최초의 순교자
한국 천주교의 공식적인 시작은 1784년으로 기록됩니다. 명례방(明禮坊)에 살던 김범우(金範禹) 선생 댁에서 신자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그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인 1785년, 을사년(乙巳年)에 이 모임이 형조(刑曹)에 발각됩니다. 형조를 추조(秋曹)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이 사건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라 합니다.
쉽게 말해 조선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입니다. 당시 형조판서 김화진은 잡혀온 신자들을 문초(問招)하려 했습니다. 문초(問招)란 죄인을 불러 심문하는 조선시대 공식 조사 절차입니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광암 이벽, 다산 정약용, 정약전 같은 당대 최고의 선비 집안 출신이라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김화진은 양반들은 타일러 훈방하고, 중인(中人) 신분이었던 집주인 김범우에게만 분풀이를 합니다.역관(譯官)이란 외국어 통역을 담당하던 직책으로, 지식인이었지만 신분은 중인에 불과했습니다. 김범우는 문초에서 천주교 교리를 막힘없이 대답했고, 결국 매를 맞고 귀양길에 오릅니다.
귀양지로 가는 길에도 천주교 교리를 전하다가, 매 맞은 상처가 악화되어 그곳에서 돌아가십니다. 달레 신부는 이분을 한국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했습니다. 그 후 1791년 진산 사건의 주인공 윤지충이 조선 정부로부터 공식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교한 최초의 사례가 됩니다.
한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적 흐름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784년: 명례방 김범우 선생 댁에서 한국 천주교 공식 출발
-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 — 최초의 천주교 박해
- 1791년: 진산 사건 — 윤지충, 조선 정부로부터 공식 사형 판결 후 순교
- 1801년: 최초의 전국적 박해 발생
- 1839년: 두 번째 전국적 박해, 한국 최초의 순교 성인 탄생
현재 윤지충 등 초기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리기 위한 시성(諡聖)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시성(諡聖)이란 교황이 공식적으로 성인(聖人)임을 선포하는 절차입니다.
원시장 베드로의 순교, 그 문초록이 전하는 것
자주 묻는 질문
Q. 을사추조적발사건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A. 1785년(을사년)에 명례방 김범우 선생 집에서 천주교 모임을 하던 신자들이 형조(추조)에 발각된 사건입니다. 한국 천주교 역사상 최초의 박해 사건으로 기록되며, 이때 중인 신분이었던 김범우가 잡혀가 매를 맞고 귀양지에서 숨진 것이 최초의 순교 사례로 거론됩니다.
Q. 김범우와 윤지충 중 누가 진짜 최초 순교자인가요?
A. 두 분은 기준이 다릅니다. 김범우는 신앙 때문에 매를 맞고 그 상처로 사망한 최초 사례이고, 윤지충은 조선 정부로부터 공식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교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역사책마다 서로 다른 분을 최초로 기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Q. 순교자들이 문초에서 어떻게 그렇게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나요?
A. 조선 관리들은 천주교 신자를 잡아도 바로 매질하지 않고 교리를 묻는 방식으로 심문했습니다. 교리를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오히려 내쫓아 버렸기 때문에, 매를 맞은 사람들은 이미 교리를 완벽히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강의에서는 이것을 성령의 도움으로 설명하며, 복음서에도 "잡혀갔을 때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하지 마라, 그때 성령이 말하겠다"는 구절이 있다고 전합니다.
Q. 신앙의 네 가지 유형 중 현세적 기복형은 지금도 있나요?
A. 1800년대 조선의 이야기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 시대와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당 안에서도 "영육 간의 건강을 주시고"라는 기도가 반사적으로 나오고, 승진하면 "하느님 은총을 입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여전히 있습니다. 내 신앙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기준으로 삼을 만합니다.
Q. 교적 이전은 꼭 해야 하나요?
A. 교적 이전은 의무이지만 즉시 하지 않아도 바로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 천주교 특유의 선교 지역 제도상 연간 고해성사 관리 등이 본당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급적 이사 후 새 본당에 방문해 교적을 옮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성당이더라도 미사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원시장 베드로와 초기 순교자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넘어, 각자의 일상 속에서 진정한 신앙적 결단을 실천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