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파우스티나의 환시 (연옥, 지옥, 천국)
유구 성당에서의 체험
댓글 부탁,감사합니다.
지난 2018 년 1 월 공주 유구에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그해 유난 히도 추운 겨울 이었다,
유구 성당에 미사 드리러 자주 갔다, 그때 성전 건립이 한창 인 때 였다,
십시일반 성당에서 재원 마련 기획이 여러가지 진행 되고 있었다.
나는 인견 이불 쎄트를 샀다.
낙지 젓 과 신자가 담근 된장도 샀다, 된장은 참 맛이 좋았다.
성당에 자주 가다 보니 신부님도 나를 알아보쎴다.
어느날 미사에 갔느데 사무장님이 나에게 독서를 해보라고 권고 하셨다.
아직 한 번도 안해 보았다고 하였더니 천천히 읽으면 된다고 안심 시키셨다.
그래서 독서를 하려고 제대에 올라 갔다.
그런데 그게 쉬운게 아니었다.
제대로 숨도 안 쉬어지고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았다.
숨도 제대로 못쉬어 가며 어찌어찌 마쳤다.
그날 독서가 이렇게 어려운건가 하는 생각이 들며 많이 놀랏다.
숨쉬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적은 처음 이었다.
여러날 뒤에 또 독서를 하게 되었는데 그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날 느낀것이 " 아! 하느님께 무엇을 올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 그제서야 알았다.
성전에 봉사 하는 신자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나도 봉사를 하고싶어졌다.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성녀 파우스티나의 체험으로 지옥과 천국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나는 있다고 믿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이런체을
그냥 넘길게 아니라 항상 묵상 하고 고뇌하고 어떻게 신앙 생활을 잘 할 것 인가를 잘 생각 해야 한다.
어떤 신부님의 농담 말씀이 천국이 있다고 믿어도 걱정, 없다고 믿어도 걱정이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막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갈까봐 걱정,착하게 잘 살다가 죽었는데 천국이 없을까봐 걱정 이라는 말씀을 듣고 하하 웃은 적이 있다.
혹시 지옥이 있을지도 모르니 착하게 살아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혹시 천국이 없다고 하여도 우리는 착하게 잘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흠숭 하며 잘 살아 봅시다.
연옥 — 하느님을 갈망하는 영혼들의 자리
성녀 파우스티나(Saint Faustina Kowalska)는 폴란드 출신의 가톨릭 수녀로,
예수님과 같은 3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첫 서원(First Vows, 수도자가 수도회에 정식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서약) 이후 받은 첫 환시(Vision)가 바로 연옥이었습니다.
환시란 통상적인 감각을 넘어 하느님 혹은 영적 실재를 직접 체험하는 신비 현상을 뜻합니다.
그녀의 기록에 따르면 연옥은 안개와 불이 가득한 곳이었고, 그곳의 영혼들은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영혼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가장 큰 고통은 단 하나, 바로 하느님을 갈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을 바라지만 아직 그 자리에 이르지 못한 상태, 그것이 연옥의 본질이라고 파우스티나는 전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2018년 유구 성당에서 처음 독서대에 올라섰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준비는 했는데 막상 제대 앞에 서니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고 숨이 제대로 안 쉬어졌습니다.
그냥 앞에서 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하느님 앞에 무언가를 올리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연옥의 영혼들이 하느님을 갈망하면서도 닿지 못하는 고통, 어렴풋이나마 그 거리감이 어떤 것인지 그날 제 몸으로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가톨릭 교리에서 연옥(Purgatory)은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 영혼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전 거치는 정화의 과정을 뜻합니다.
파우스티나의 환시는 이 교리적 설명에 살아있는 체온을 입혀줍니다.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행위가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그녀의 기록은 그것을 아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옥 — 파우스티나가 직접 본 일곱 가지 고통
파우스티나가 신성한 자비의 예수님(Divine Mercy)에 관한 메시지를 받은 이후, 그녀는 지옥에 대한 환시를 보게 됩니다.
신성한 자비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가 죄인을 향해 끝없이 열려 있다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 메시지로, 파우스티나는 이것을 온 세상에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비를 외면했을 때 어디로 가게 되는지도 직접 보았습니다.
그녀가 기록한 지옥의 고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부재(Absence of God) — 하느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첫 번째이자 가장 근본적인 고통입니다.
영원히 후회하는 양심 —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끝없이 후회하는 상태입니다.
상태의 불변성 — 자신의 상태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고통입니다.
영적인 불(Spiritual Fire) — 육체를 태우는 물리적 불이 아닌, 하느님의 분노로 불붙은 순수한 영적 고통입니다. 영혼은 소멸되지 않기에 이 고통 역시 끝이 없습니다.
계속되는 어둠과 질식할 듯한 냄새 — 그 어둠 속에서도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들은 서로를 볼 수 있고, 서로의 모든 악을 목격합니다.
사탄의 상존 — 사탄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절망, 하느님에 대한 증오, 저주와 모독 — 이것이 저주받은 모든 영혼이 공통으로 겪는 고통입니다.
이 일곱 가지 외에도 각 영혼은 자신이 죄를 지은 감각 기관으로 특별한 고통을 받는다고 파우스티나는 기록했습니다.
혀로 죄를 지은 영혼은 혀가, 손으로 범한 영혼은 손이 영원히 고문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감각적 형벌(Sensory Punishment)이란 이처럼 죄를 범한 신체 부위 또는 감각이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솔직히 이 대목은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지옥이 없다고, 혹은 선량한 사람은 다 어디든 잘 가게 될 거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파우스티나는 "어떤 영혼도 지옥이 없다는 말로 변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의 명령으로 이 글을 쓴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그 문장이 유독 오래 남았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공식 교리서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CCC)에서도 지옥의 존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CCC 1033항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자유롭게 거부하는 상태"가 곧 지옥임을 가르칩니다. 파우스티나의 환시는 이 교리를 생생한 체험의 언어로 전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ref="https://www.vatican.va/archive/catechism/p123a12s3.htm" target="_blank",바티칸 공식 교리서(vatican.va)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천국 — 눈으로 본 적 없는 행복의 근원
파우스티나가 생을 마칠 날이 가까워졌을 때, 그녀는 마지막으로 천국에 대한 환시를 보았습니다. 그 기록은 앞선 두 환시와는 결이 전혀 달랐습니다.
지옥과 연옥의 기록이 고통과 갈망의 언어였다면, 천국의 기록은 말을 잃은 자의 언어였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께 끊임없는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을 보았고, 그 행복이 모든 피조물에게 퍼져나가 다시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성 바오로의 말씀,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는 구절을 비로소 이해했다고 썼습니다.
제 경험상, 독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던 날 사무장님이 건넨 따뜻한 한 마디가 오히려 더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미사가 끝나고 나서 저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신자들의 얼굴이 그날따라 다르게 보였습니다.
천국에 대한 파우스티나의 묘사가 말로 다 못한다고 한 것처럼, 어떤 것들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 무게를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신비체험(Mystical Experience)이란 일상적 감각과 이성을 초월해 신적 실재와 직접 접촉하는 체험을 가리킵니다. 가톨릭 신비신학(Mystical Theology)에서는 이러한 체험을 하느님께서 특정한 사명을 위해 특별히 허락하신 은총으로 봅니다.
파우스티나의 천국 환시는 단순한 개인적 위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초대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녀 파우스티나에 관한 더 자세한 자료는 href="https://www.faustyna.pl/zmbm/en/" target="_blank",파우스티나 수녀원 공식 사이트(faustyna.pl)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성녀 파우스티나의 환시 기록은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인가요?
A. 네, 파우스티나 수녀는 1993년 복자품에 오른 뒤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일기와 환시 기록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 검토를 거쳤으며, 신성한 자비 신심은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 전례로 거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 환시들은 계시의 보조적 성격을 지닌 사적 계시(Private Revelation)로 분류되며, 신앙의 의무 조항은 아닙니다.
Q. 연옥과 지옥은 어떻게 다른가요? 둘 다 고통스러운 곳 아닌가요?
A. 파우스티나의 환시를 기준으로 보면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연옥의 영혼들은 하느님을 갈망하며 기도하고, 살아있는 이들의 기도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지옥은 하느님의 완전한 부재와 함께 상태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곳입니다. 연옥은 정화의 과정이고, 지옥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최종 거부한 결과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Q. 지옥이 정말 있다고 믿어야 하나요?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A. 어느 신부님이 농담처럼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어도 걱정, 없다고 믿어도 걱정이라고요. 있다고 믿으면 잘못 살다가 지옥 갈까 봐 걱정이고, 없다고 믿으면 착하게 살았는데 아무것도 없을까 봐 걱정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어느 쪽이든 착하게 사는 것이 손해가 없다는 이야기이고, 저도 그 말에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Q. 신성한 자비(Divine Mercy)는 무엇이고 파우스티나와 어떤 관계인가요?
A. 신성한 자비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가 모든 죄인에게 열려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으로부터 이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리라는 사명을 받았고, 이를 위해 연옥과 지옥의 환시도 보여주셨다고 그녀는 기록했습니다.
지옥의 처참함을 알아야 자비의 소중함도 더 깊이 와닿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Q.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파우스티나의 기록을 읽을 의미가 있나요?
A.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의 일곱 가지 고통 중 첫 번째가 하느님의 부재이고, 연옥의 가장 큰 고통이 하느님을 갈망하는 것이라는 대목은 신앙을 떠나 인간의 고독과 갈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신앙의 언어로 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물음은 보편적입니다.
지옥이 있든 없든, 천국이 있든 없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파우스티나의 기록을 읽고 나면 그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의무감이 아니라 간절함으로 느껴집니다.
유구 성당 제대 위에서 숨이 막히던 그 순간처럼, 하느님 앞에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라도 느껴보셨다면 이 글이 작은 묵상의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신앙적 의견을 나눈 것이며, 특정 교리에 대한 전문적인 신학 해설이 아닙니다.
참고: www.tundra7.com
https://www.vatican.va/archive/catechism/p123a12s3.htm
https://www.faustyna.pl/zmbm/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