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한과 분배 정의 (교환 정의, 애덕 실천, 신앙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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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공원을 몇 바퀴나 돌아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던 날, 저는 결국 성당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날 성모상 앞에서 짧은 찰나에 경험한 일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신앙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200년 전 한 평신도가 혼자 책만 붙들고 실천했던 삶이 왜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지, 그 두 가지 질문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교환 정의만 알던 사회에서 혼자 책을 읽은 사람
홍유한(洪儒漢)은 조선 후기 천주교 평신도로, 신부님을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교리 책만으로 신앙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서울에서 신앙을 시작했다가 경상도 영주로 내려갔고, 제자들이 따르자 이를 피해 더 깊은 산속인 구굴(구굴리))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따를수록 더 멀리 물러난 것인데, 저는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조금 낯설었습니다. 보통 신앙의 열매를 나누려면 오히려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홍유한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서 먼저 완성하려 했습니다.
그가 책만 보고 실천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주일 문제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요일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7일마다 주일이 온다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주일인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홍유한은 스스로 정했습니다. 매달 7일, 14일, 21일, 28일을 주일로 삼아 그날 단식하고 기도했습니다. 교환 정의(交換正義)란 내가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균형을 전제로 한 정의입니다. 쉽게 말해 콩 심은 데 콩 나는 원리입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이 교환 정의의 틀 안에서만 움직였습니다. 홍유한은 그 틀을 혼자서 조용히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 말에서 내린 이유, 그리고 짐을 얹지 않은 이유
홍유한의 실천 중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이 있습니다. 비 오는 날 말을 타고 가던 그가 짐을 둘러멘 노인을 발견하고 말에서 내립니다. 노인을 말에 태우고 짐은 자기가 직접 졌습니다. 애덕 실천(愛德實踐)이란 천주교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구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냥 자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옮기는 행위입니다. 노인을 태운 것까지는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일 텐데, 짐을 말에 얹지 않고 자기가 진 이유가 핵심입니다.
짐승이라도 함부로 혹사시키지 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200년 전에 이미 동물 복지의 감각이 신앙 실천 속에 녹아 있었던 겁니다. 지금 천주교에서 환경 보호와 피조물 돌봄을 강조하는 흐름과 정확히 같은 맥락입니다. < href="https://www.cbck.or.kr" target="_blank">한국천주교주교회의</a>에서도 생태적 회심과 피조물 보호를 신앙 실천의 한 축으로 공식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홍유한은 그것을 이론이 아니라 비 오는 산길에서 혼자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걸 알고 나서 솔직히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자동차를 타면서 가끔 환경 걱정을 입으로만 하고 있었으니까요.
밭값을 돌려준 사람, "이런 경우도 있다네"
홍유한이 일군 산비탈 밭을 어느 농부가 평생 머슴살이로 모은 돈을 전부 털어 삽니다. 자기 땅을 가지고 살아보겠다는 꿈 하나로 쓴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뒤 큰 비와 산사태로 그 밭이 완전히 유실됩니다. 소식을 들은 홍유한이 찾아와서 밭값을 고스란히 돌려줍니다. 농부는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홍유한은 딱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이 사람아, 이런 경우도 있다네."
분배 정의(分配正義)란 교환의 균형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나누는 정의입니다. 잘한 만큼 받는 게 아니라 형편에 따라 주는 원리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죗값을 그대로 적용하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교환 정의가 아닌 분배 정의로 작동하기 때문에 용서와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 홍유한은 그것을 삶으로 보여줬습니다. 이 장면을 읽고 저는 한동안 멍했습니다. 선문답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가장 단단한 신학적 논리가 담긴 한 문장이었습니다.
교황청이 선진국에게 가난한 나라의 채무를 탕감해달라고 촉구하는 것도 같은 뿌리입니다. 바티칸 공식 사이트 에서도 희년(禧年) 정신과 부채 탕감에 관한 문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희년(禧年)이란 구약 성경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50년마다 모든 빚을 탕감하고 종을 해방하며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해를 말합니다. 홍유한이 200년 전 산속에서 혼자 실천한 그 '경우에 없는 짓'이 사실은 성경이 말하는 가장 오래된 사회 정의의 원형이었습니다.
홍유한이 실천한 신앙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일 준수: 요일 개념 없이도 7일 단위로 날을 정해 금식과 기도를 실천했습니다.
애덕 실천: 비 오는 날 노인을 말에 태우고 짐을 직접 짊어졌습니다.
동물 복지: 말에 짐을 얹지 않아 짐승을 학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분배 정의: 자연 재해로 밭을 잃은 농부에게 밭 값 전액을 돌려줬습니다.
성모상의 미소와 아내에게 건넨 사과
저는 신앙 체험(信仰體驗)을 이야기하면 냉소적인 반응을 많이 접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일 수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냉소보다는 아직 그 순간을 맞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오로도 다마스쿠스 가는 길에서 빛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날 저는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나서 제 생각이 딱히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원을 몇 바퀴 걸어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당 입구 성모상 앞에 서서 성호경을 그었을 때, 돌로 조각된 성모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봤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했습니다. "베드로야, 왔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만 쓸 수 있는 표현이 있다면 바로 이 장면입니다. 그건 제가 경험했고 제가 느꼈습니다.
신앙 체험이란 흔히 기적이나 특별한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것은 훨씬 조용하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옵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먼저 사과했고, 아내도 자기가 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밥이 유난히 맛있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화해란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성당에서 시작됐다는 걸 저는 압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홍유한은 어떤 사람인가요? 천주교 공식 성인인가요?
A. 홍유한은 18세기 조선의 천주교 평신도로, 신부님을 만나지 못한 채 교리 책만으로 신앙을 실천한 인물입니다. 현재 공식 시성(諡聖) 대상은 아니지만,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자발적 신앙 실천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실천한 주일 준수, 단식, 애덕 실천은 당시 조선 사회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Q. 분배 정의와 교환 정의는 어떻게 다른가요?
A. 교환 정의는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균형과 대등함을 원칙으로 하는 정의입니다. 반면 분배 정의는 필요와 형편에 따라 나누는 정의로, 균형보다 상대의 처지를 우선합니다. 홍유한이 밭값을 돌려준 것은 교환 정의로는 "경우 없는 일"이지만, 분배 정의로는 가장 자연스러운 실천이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의 사랑 자체가 이 분배 정의의 원리로 작동한다고 봅니다.
Q. 성당에 가기 싫을 때도 억지로 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A. 이 부분은 생각하는 분들마다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의지로 가는 것에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신앙이란 감정이 항상 뒤따르지는 않습니다. 감정이 없을 때 의지로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신앙의 실천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제가 그날 경험한 것도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마음이 다운된 상태로 갔지만, 나왔을 때는 달랐습니다.
Q. 선교를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냉소적으로 반응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무리하게 설득하려 하면 오히려 거리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같은 고민을 합니다. 제 경험상 가장 설득력 있는 선교는 말보다 삶이었습니다. 홍유한도 가르치러 다닌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었고, 제자들이 스스로 따라왔습니다. 말보다 삶이 먼저라는 원칙이, 지금 제가 붙들고 있는 방향입니다.
홍유한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사실 "200년 전 사람 이야기가 나랑 무슨 상관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의 말다툼, 성모상 앞에서의 그 찰나, 집에 돌아와 건넨 사과 한마디를 돌아보니 그게 다 이어져 있었습니다. 신앙 실천이란 거창한 순교가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 내가 먼저 사과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지금 신앙에 대해 막연하게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홍유한의 삶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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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www.tundra7.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