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 (승천 차이, 성화 묵상, 별빛 체험)
수 승천과 성모 승천, 같은 단어 다른 신학
라틴어와 영어권에서는 이 두 사건을 아예 다른 단어로 구분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어센션(Ascension)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 위로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반면 성모님의 승천은 어섬션(Assumption)이라고 부릅니다.
'타인에 의해 올려진다, 받아들여진다'는 뜻으로, 수동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영어 두 단어가 담고 있는 신학적 무게가 이미 명확히 다른 겁니다.
예전 전례 용어에는 성모 승천을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불렀습니다.
몽소승천이란 '하느님의 부르심을 입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입을 몽(蒙), 부를 소(召), 오를 승(昇), 하늘 천(天). 한자 한 글자 한 글자가 다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요즘은 '성모 승천'으로 통일해서 부르다 보니
이런 섬세한 신학적 구분이 희미해진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성화(聖畫)를 보면 이 차이가 시각적으로 바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그린 그림에는 예수님 아래쪽에 천사가 없습니다.
당신 스스로의 신적 권능으로 오르시기 때문입니다.
반면 1516년 티치아노가 그린 성모 승천 성화를 보면,
성모님의 발밑과 주변을 수많은 천사가 소용돌이치듯 둘러싸고
성모님을 위로 떠받치는 구도로 그려집니다.
피조물이신 성모님은 스스로 올라가실 수 없고,
예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에 의해 들어올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성모 공경(恭敬)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공경이란 피조물에게 드리는 높은 존경을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모님을 흠숭(欽崇)하지 않습니다.
흠숭이란 오직 삼위일체 하느님께만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성모님도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이셨기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끌어올림을 받으셨고,
바로 그 사실이 우리에게 희망이 됩니다. 우리도 같은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1,800년 전 카타콤바에서 올라온 기도
가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성경 어디에 성모 승천이 나와요? 교황청이 나중에 만든 교리 아닌가요?" 이 질문에
저는 이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인류에게 알려진 성모님께 바치는 가장 오래된 기도문이
'숩 뚬(Sub Tuum Praesidium)'입니다.
숩 뚬이란 라틴어로 "당신의 보호 아래에"라는 뜻으로,
기원후 250년경 파피루스 조각에 기록된 형태로 발견된 기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800년 전, 박해받던 초기 교회 신자들이 지하 무덤에서 바쳤던 기도입니다.
모차르트도 이 기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연주곡(K.198)을 남겼습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마침 기도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도문뿐만 아니라 시각적 유물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로마의 카타콤바(Catacomba), 즉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지하 무덤의 벽면에는 기원후 230년대에 그려진 성모자상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이는 사도들의 제자 세대부터 이미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깊이 공경해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1950년 성모 승천 교리 선언을 앞두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청으로 보낸 청원의 규모를 보면
이 신앙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추기경 113명 서명 참여
대주교 및 주교 300여 명 동참
사제 및 남자 수도자 3만 2천 명 청원
여자 수도자 5만 명 서명
평신도 800만 명 이상 청원서 제출
이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교황 무류성(Infallibilitas)을 행사하여 비오 12세 교황님이
1950년 11월 1일 성모 승천을 공식 선언하셨습니다.
교황 무류성이란 교황이 전 세계 교회를 향해 신앙과 윤리에 관한 진리를 엄숙히 선언할 때
성령으로 오류에서 보호받는다는 뜻입니다.
교황 개인이 어떤 말을 해도 틀리지 않는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성모 승천 교리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800년 넘게 신자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져 온 신앙을 교회가 엄숙하게 확인한 날입니다.
출처: 바티칸 공식 문서
파주에서 별빛이 쏟아지던 그 아침
제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하나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파주에서 일용직 일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일이 없는 날이나 주일에는 오전 8시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천주교 참회와 속죄의 성당을 찾았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성당으로,
그 공간 자체가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줬습니다.
저는 항상 맨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11시 미사 전까지 두세 시간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관상 기도(Contemplative Prayer)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관상 기도란 복잡한 생각과 말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임재 안에 고요히 머무는 깊은 기도를 말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육체적으로 졸음이 오거나 잠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기 예수의 성 테레사 성녀도 기도 중에 자주 잠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성녀는 "부모는 자녀가 깨어 있을 때뿐 아니라 잠들어 있을 때도 똑같이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아침, 기도 중에 선명하고 맑은 공간이 펼쳐지면서
아름답고 반짝이는 별이 스무 개 남짓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황홀하다는 말 외에는 설명이 안 됩니다.
깨어났을 때 온몸에 감사함이 차올랐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그 별빛이 내려오던 장면은 생생하고, 그 성당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 경험이 성모 승천 묵상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성모님이 천사들에 의해 들어올림을 받으신 것처럼,
그날 저도 무언가에 의해 위로 끌어올림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영성 신학에서 말하는 성령 체험(Spiritual Experience)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령 체험이란 기도 중에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인격적으로 느끼는 체험을 말합니다.
교리 공부로 아는 것과 직접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성화 속 장면들이 알려주는 것, 그리고 선교의 이유
성화는 글을 모르는 옛날 사람들을 위한 그림이 아닙니다.
화가들의 깊은 기도가 색채로 써 내려간 성경입니다.
1526년 콜레지오(Correggio)가 이탈리아 파르마 대성당 천장에 그린
성모 승천 성화는 이 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관람자가 성당 바닥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려졌는데,
수많은 천사와 성인이 소용돌이치며 성모님을 맞이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보는 순간 2,000년 전 현장에 직접 서 있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성화는 1406년 타데오 바르톨로(Taddeo di Bartolo)의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승천 성화에는 성모님과 천사들만 나오는데,
이 그림에는 성모님의 임종 침대 주변에 슬퍼하는 사도들이 있고,
그 한가운데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십니다.
사도들은 울고 있지만 성모님은 눈을 떠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쁨의 미소를 짓습니다.
저는 병원 장례 미사에서 유가족들에게 이 장면을 자주 떠올립니다. 죽
음은 소멸이 아니라 주님과의 재회이기 때문입니다.
1310년 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성모 안식도에는 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있습니다.
침대에 누운 성모님 곁에 선 예수님이 작고 하얀 아기를 품에 안고 계십니다.
이 아기는 성모님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포대기에 싸서 키우셨던 어머니를 이제 성인이 된 예수님이 어린아기처럼 품에 안아 천국으로 모셔가는 장면입니다. 사랑의 거룩한 역전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나면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가끔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진리를 이야기해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시고,
오히려 하느님을 믿는 저를 딱하게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파주에서 직접 본 그 별빛을 기억하는 한, 저는 계속 이야기할 것입니다.
세례성사(Baptism)를 받은 모든 신자는 선교의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세례성사란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입문 성사로,
그 순간부터 복음을 나누는 사명이 주어집니다.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
제가 하느님을 알리는 일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느님을 다른 분들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예수님 승천과 성모님 승천은 정확히 어떻게 다른가요?
A. 예수님의 승천은 어센션(Ascension)으로 당신 스스로의 신적 권능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어섬션(Assumption)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사들에 의해 들어올림을 받으셨습니다.
한글로 둘 다 '승천'이라고 쓰다 보니 혼동이 생기지만,
신학적으로는 본질부터 다른 두 사건입니다.
Q. 성모 승천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데 왜 믿어야 하나요?
A. 성경에 명시적 구절이 없다고 해서 교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는 성경(聖經)과 성전(聖傳), 즉
사도로부터 내려온 구전 전통을 함께 신앙의 근거로 삼습니다.
기원후 250년 파피루스에 기록된 숩 뚬 기도,
230년대 카타콤바 벽화, 800만 명 이상의 청원 등이 1,800년 넘는 신앙의 역사를 증명합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에서 예수님이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가장 먼저 이 약속을 지키셨다는 해석이 성경적 근거로 제시됩니다.
Q. 관상 기도 중에 잠이 오는 것은 기도를 잘못하는 건가요?
A. 아닙니다. 아기 예수의 성 테레사 성녀도 기도 중에 자주 잠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성녀는 "부모는 자녀가 잠들어 있을 때도 똑같이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관상 기도에서 육체적 졸음은 영혼이 하느님 안에서 깊은 안식을 누리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억지로 각성 상태를 유지하려 하기보다,
그 고요함 속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깊은 기도의 자세입니다.
Q.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우상숭배 아닌가요?
A.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欽崇)과 성인에게 드리는 공경(恭敬)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숭은 오직 삼위일체 하느님께만 드리는 예배이고,
공경은 하느님을 섬긴 성인들에 대한 높은 존경입니다.
성모님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이시며, 바로 그 사실이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피조물인 성모님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천상 영광에 들어올려지셨다면
우리도 그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님 혼자 잘되셨다고 박수 치는 날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끌어올리셨듯이,
지금 삶의 무게에 눌려 고개 숙인 우리도
언젠가 그 은총 안으로 끌어올려질 것이라는 희망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파주에서 본 그 별빛이 저에게 그걸 알려줬습니다.
오늘 하루 어깨 한 번 쭉 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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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www.tundra7.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