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거울 (마음 진단, 회개, 성령 체험)
거듭나지 않은 마음과 회개하는 마음
댓글 부탁,감사합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늘 죄 지음과 고해 성사를 통한 회개를 하며 살아 갑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늘 용서 하시고 받아 주십니다.
나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는 대죄가 아닌,현세에서 큰 죄를 지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새길로 들어 선 사람입니다.
인자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방법 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진실한 신자로 거듭 났습니다.
10년 쯤 전 성모승천 대축일에 미사중 내가 성령 체험 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날 대축일 미사는 참석 인원이 많아서 성당 밖 통로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성당 출입 문 바로 앞, 간이 의자 맨 앞줄에 앉아서 미사를 봉헌 하고 있었습니다.
성당 출입문은 양쪽으로 최대한으로 열려 있었습니다. 문 뒷쪽으로 약간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미사 막바지에 영성체 하는 시간이었는데 어린아이와 엄마가 영성체를 하고 나오는 길 이었습니다.
아이는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엄마가 장난으로 성당 문 뒤에 숨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잘 나오다가 뒤를 돌아 보고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순간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며 엄마를 찿았습니다.
분명 엄마가 뒤에 있는 것을 아는 아이가 울었습니다. 보이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나는 그순간 아! 내가 저렇게 살고 있었구나! 하고 탄식 했습니다.
내 뒤에는 항상 하느님께서 계시건만 나는 저 아이처럼 뒤에 계시는 하느님을 없는 것 처럼 느끼며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늘 항상 내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온 몸에 소롬이 돋고 머리카락이 바짝 곤두섰습니다.
그날의 성령 체험으로 지금은 늘 내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열심으로 기도 하고 미사 참여 잘 하고 있습니다.
이 강론이 너무 길어서 3회 로 나누어서 게시 하려합니다, 2편 3편도 기대 해 주세요.
오늘 요셉 신부님으 강론을 들으면서 배운게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항상 하느님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악령들이 호시 탐탐 내 안에 들어 오려고 한다는 것 입니다.
그 경로는 너무 간단하고 쉽다는 것입니다. 미사 한번 빠지기. 형제 들과 반목 하는것.
너무 인터넷에 빠지는것 등이 악령이 들어 오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하고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마가 한번 자리를 잡으면 내 보내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늘 상기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늘 기도하며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당에도 자주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사를 드릴때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서 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악령이 들어 올 틈이없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성령의 힘으로 악령들을 물리치기를 기도 드립니다.하느님 감사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9장의 그림으로 해부한 500년 된 영성 도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성찰이란 막연히 "착하게 살자"는 다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이 강의를 들으며 느낀 건 전혀 달랐습니다.
각 그림 속 동물 하나하나가 제 안의 어떤 감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고,
그 순간 불편해졌습니다. 내 안에 뭔가 건드려졌다는 뜻이겠죠.
원죄와 거듭나지 않은 마음 — 공작새와 염소가 사는 곳
원죄(原罪, Original Sin)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첫 번째 죄가 인류 전체에 유전된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의 성질을 안고 온다는 개념입니다.
이 도해의 첫 번째 그림은 바로 그 상태, 즉 성령 없이 마귀가 마음 중심을 차지한 인간을 묘사합니다.
그림 속에는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공작새는 교만(驕慢)을 상징합니다.
교만이란 자신을 실제보다 크게 보이려는 욕구인데, 이 강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비유가 있었습니다.
교만은 속옷과 같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을 때 가장 먼저 걸치고, 벗을 때 가장 마지막에 벗는 것이 속옷이듯,
교만도 그렇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들어왔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겸손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타인의 성공에 괜히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는 걸 이 대목에서 떠올렸거든요.
염소는 호색(好色)을 뜻합니다. 이성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말하는데,
염소의 꼬리 아랫부분 분비샘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에서 비유된 것입니다.
돼지는 탐욕(貪慾), 즉 지나친 소유욕입니다. 자라는 해타(懈惰), 쉽게 말해 게으름입니다.
때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고, 어려운 일은 슬쩍 피하며 좋은 것만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뜻합니다.
호랑이는 분노 조절 장애에 해당하는 포악함, 뱀은 거짓말과 이중성, 여우는 교활함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 그림에서 눈은 감겨 있고, 양심을 상징하는 별은 어둡습니다. 성령은 이 사람 밖에 머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쁜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이 그림을 보며 느낀 건 이 동물들이 전부 제 안에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불편하지만 정직한 인식이었습니다.
회개의 의미 — 뉘우침만으로는 절반도 안 됩니다
두 번째 그림은 회개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일반적으로 회개(悔改)란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강의는 그것이 절반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회개의 한자를 풀면 '뉘우칠 회(悔)'에 '고칠 개(改)'입니다.
뉘우침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행동을 바꿔야 회개가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탕자(蕩子)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탕자란 재산을 흩어버리고, 질서를 무너뜨리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사람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성경 루카 복음 15장에는 '탕자'라는 표현이 직접 나오지 않고 '둘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관용적으로 탕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아들의 여정은 반항 → 방황 → 방향 수정이라는 세 단계로 요약됩니다.
반항하다가 방황하다가, 결국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방향을 정하고 실행에 옮긴 것, 그것이 진짜 회개라는 겁니다.
두 번째 그림에서 마귀는 마음 밖으로 나가 있고, 동물들의 방향이 바깥을 향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빛이 내려오기 시작하고, 양심의 별도 밝아집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아직 밝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뭔가 바꿔야겠다는 마음은 들었는데 몸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그 중간 상태, 저도 여러 번 경험해봤습니다.
회개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자신의 상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것 (인식)
지금까지 가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하는 것 (결단)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 (실행) — 이것이 빠지면 회개가 아닙니다
이 세 단계 중 실행이 가장 어렵습니다. 저도 솔직히 인식과 결심은 꽤 자주 하는데, 실행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래서 이 강의가 찜찜하게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거듭남과 성화 — 얼굴이 바뀌는 이유
세 번째 그림은 거듭난 사람, 네 번째 그림은 성화(聖化)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거듭남, 즉 중생(重生)이란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이 니코데모에게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세 번째 그림에서는 마귀와 악한 성품의 동물들이 마음 밖으로 완전히 나가 있습니다.
성령이 마음 중심으로 들어옵니다. 얼굴 표정이 온화해지고 머리도 단정해집니다.
이 강의에서 '얼굴(顔)'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습니다.
얼굴이란 사람의 '얼(정신, 영혼)'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굴(구멍)'이라는 것입니다. 눈, 코, 입이 모두 그 통로입니다.
마음 상태가 얼굴로 나온다는 뜻이죠. 제 경험상 이건 꽤 정확합니다.
내면이 불안하거나 분노가 쌓였을 때, 거울을 보면 그게 티가 납니다.
네 번째 그림, 성화된 사람의 마음에는 십자가가 중심에 자리 잡습니다.
성화(聖化, Sanctification)란 거듭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거룩해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한 번 거듭났다고 영원히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이 강의의 핵심 중 하나였습니다.
세 번째 그림에서는 천사가 십자가를 들고 이 사람 마음 밖에 있지만,
네 번째 그림에서는 십자가가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마귀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마음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을 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성화를 "세례성사로 시작된 은총의 삶을 성사와 기도, 덕행의 실천을 통해 성장시켜 나가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 도해가 500년 전 15세기에 제작되고 200년 전 독일의 한 신부에 의해 정리된 것임을 감안하면, 그 영성적 통찰의 깊이가 놀랍습니다.
또한 Bible Gateway,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 이 문장이 네 번째 그림의 상태를 가장 잘 압축한다고 느꼈습니다.
식어짐과 배교, 그리고 두 가지 죽음
다섯 번째 그림부터가 이 도해에서 가장 경고의 의미가 강한 부분입니다. 다섯 번째는 냉담(冷淡)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냉담이란 신앙이 식어 형식적으로만 종교 생활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그림에서 십자가는 있는데 예수님이 없습니다. 성령은 다시 밖으로 나가 있고, 눈은 반쯤 감겨 있으며, 양심의 별은 다시 어두워집니다. 천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 사람 곁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앙이 식는 것을 "바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그림은 그것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영적 퇴보의 신호임을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 다섯 번째 그림의 상태는 한 번에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주일 미사 한 번 빠지고, 기도 조금 줄이고, 헌금 챙기다 안 챙기고, 이런 식으로 서서히 진행됩니다. 그 작은 누적이 결국 "십자가는 있는데 예수님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거라는 게 섬뜩했습니다.
여섯 번째 그림은 배교(背敎)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배교란 한때 믿었던 신앙을 완전히 등진 상태를 뜻합니다. 이 그림에서 마귀가 처음 한 마리에서 다시 8마리로 늘어납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에 근거한 묘사입니다. 한 마리가 나갔다가 더 악한 일곱을 데리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배교한 사람이 더 무서운 이유는 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왜곡하고 악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곱 번째는 배교자의 죽음, 여덟 번째는 거룩한 성도의 삶, 아홉 번째는 거룩한 이의 죽음을 보여줍니다. 두 죽음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배교자의 임종 장면에는 마귀가 죄목을 일일이 가리키고 천사는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습니다. 반면 거룩한 이의 임종에는 가족이 함께하고 천사가 예수님께로 인도하며, 본인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한 번 세상을 다 놔버린 사람의 표정이 저렇겠다 싶었습니다. 오히려 부러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 9가지 그림은 어디서 유래한 건가요?
A. 15세기, 즉 약 500년 전에 제작된 영성 도해입니다. 200년 전 독일의 한 신부님이 이를 정리하여 체계화했습니다. 천주교 영성 수련 전통에서 내면 성찰 도구로 활용되어 온 자료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도해가 단순한 교육 자료일 거라 생각하지만, 제 경험상 각 그림의 묘사가 현대 심리학의 내면 탐구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Q. 회개와 단순한 반성은 어떻게 다른가요?
A. 반성은 잘못을 인식하는 데서 머무르지만, 회개는 행동의 변화까지 포함합니다. '회(悔)'는 뉘우침, '개(改)'는 고침입니다. 뉘우치기만 하고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회개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쉽게 말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매번 미안하다고만 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Q. 거듭남과 성화는 어떻게 다른가요?
A. 거듭남(중생, 重生)은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사건적 전환점을 뜻하고, 성화(聖化, Sanctification)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거룩해져 가는 과정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번 거듭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 도해는 그 이후의 유지와 성장이 오히려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Q. 냉담한 신앙이 위험한 이유가 뭔가요?
A. 이 도해에 따르면 냉담한 상태는 마귀가 다시 들어올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처음 한 마리였던 마귀가 일곱을 더 데리고 돌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유혹에 훨씬 취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들으면서 느낀 건, 신앙이 식어가는 것 자체보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Q.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A. 이 도해는 자녀에게 재산이 아니라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귀한 유산이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이의 임종 그림에서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며 환송하는 장면은, 결국 살아있는 동안 어떤 관계와 신앙의 뿌리를 심어두었는지의 결과입니다. 영성 수련(靈性 修練), 즉 기도와 말씀 생활의 지속적인 실천이 그 기반이 됩니다.
이 9장의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종교적 도해라서 막연히 먼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공작새와 자라와 여우가 전부 제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불편해졌습니다. 그 불편함이 아마도 첫 번째 그림에서 두 번째 그림으로 넘어가는 시작점일 겁니다. 마음의 상태를 그림으로 살펴보는 이 성찰 도구, 한 번쯤 자신의 어떤 동물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 들여다볼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
참고: www.tundra7.com
